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공사비 상승에 따른 추가분담금은 조합원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분담금 증액에 반발해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사업 지연으로 오히려 부담이 커질 수 있어 법적 대응에 앞서경제적 실익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변호사님, 3억 원을 더 내라니요! 이건 조합이 날강도 짓을 하는 겁니다. 당장 비대위를 꾸려서 관리처분계획을 무효로 만들고 총회를 뒤엎겠습니다!”
아파트 재건축 조합원 김씨는 통지서를 세게 움켜쥐며 분통을 터뜨렸다. 수년간 녹물을 참고 버티며 마침내 새 아파트 입주의 꿈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믿었던 그에게, 최근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을 이유로 날아든 ‘추가 분담금 3억 원’ 안내문은 가혹한 철퇴였다. 사업시행 초기에 분담금이 2억 원으로 산정되었을 때에도 ‘그 정도는 부담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찬성했던 터인데, 그에 더해 3억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니 집을 팔아도 빚더미에 앉게 생겼다는 그의 비명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추가분담금에 맞선 조합원들의 법적 대응김씨와 동료 조합원들은 급증한 분담금에 맞서 싸우기 위해 두 가지 법적 무기를 들고 법원으로 향했다.
첫째, 정비사업의 핵심 행정계획인 ‘관리처분계획 무효 확인 또는 취소소송’이었다. 정당한 근거 없이 대폭 늘어난 분담금을 승인한 계획 자체를 법적으로 무력화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둘째, ‘총회결의 무효확인소송’이었다. 도시정비법상 관리처분계획의 변경은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고, 특히 정비사업비가 10% 이상 증가하는 경우에는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므로, 의결정족수 계산 오류나 서면결의서 수거 과정의 절차적 하자를 집중 공략했다.
1년 몇 개월이 넘는 치열한 공방 끝에 법원은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총회 당시 의결정족수 계산에 미세한 오차가 있었고, 서면결의서 수거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인정되어 ‘총회결의는 무효’라는 승소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김씨와 조합원들은 법원 로비에서 만세를 부르며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확신했다.
승소의 기쁨도 잠시, 추가분담금은 더 늘었다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승소 판결이 선고된 바로 다음 날부터 승소의 환희는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바뀌었다.
판결이 나자마자 현장의 공사는 즉시 중단되었다. 시공사는 “조합의 공사계약 변경 및 관리처분계획 변경 의결이 무효가 되었으므로, 증액된 공사비를 청구할 수 없어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라며 공사를 중단하고 현장을 봉쇄했다. 타워크레인은 멈춰 섰고, 아파트 골조는 삭풍 속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결국 새 집행부가 절차적 하자를 완벽히 보완해 다시 수립한 ‘새 관리처분계획 안내문’을 받은 김씨와 조합원들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소송 전 3억 원이었던 추가분담금이 소송 후 무려 4억5000만 원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정비사업 소송에서 수많은 조합원이 직면하는 가장 잔인한 반전인 ‘승자의 저주’다.
법적 승소와 경제적 이익은 다르다많은 조합원이 소송에서 이기면 늘어난 분담금이 감쪽 같이 사라지거나 줄어들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총회결의를 깨뜨리더라도 기나긴 소송이 진행된 기간 중에 자잿값과 인건비가 올랐다는 ‘경제적 실체’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송으로 허비한 시간 동안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조합원 이주비 대출 이자의 누적•지연 기간 동안의 물가상승(인플레이션)에 따른 공사비 증가•소송 비용 및 조합 운영비 추가 지출결국 법적 쟁송은 경제적 현실과 괴리될 수 있다.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지연된 기간 동안 발생한 거대한 손실이 더해져 ‘더 비싼 분담금 청구서’를 다시 받아 들게 되기 십상이다.
소송에 앞서 따져봐야 할 세 가지그렇다면 조합원은 늘어나는 분담금 앞에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법적 대응을 하더라도 대응의 방향과 전략을 바꿔야 한다.
첫째, 소송은 ‘사업 파탄’이 아닌 ‘협상력 확보’용 카드로 써라. 총회를 무작정 무력화해 사업을 멈추기보다, 소송을 대화의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부동산원 등 정비사업 전문 검증기관을 통한 ‘공사비 검증 절차’를 공식적으로 요구하여 공사비의 거품을 빼는 실리적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둘째, 절차적 하자보다 ‘내용적 타당성’과 ‘검증’에 집중하라. 도장 몇 개 덜 찍힌 절차적 하자를 찾아 총회를 깨뜨리는 것은 시간만 끌어 손해를 키울 수 있다. 대신시공사가 요구한 공사비 세부 항목 중 중복 계상되거나 과다 책정된 내역이 없는지 기술적·법률적 조력을 받아 정밀 검증을 거쳐 재협상해야 한다.
셋째, ‘실익 계산기’를 냉정하게 두드려라. 소송을 시작하기 전, 승소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분담금 감액 가능성)과 소송 지연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이자, 물가상승분, 현장 유지관리비 등)을 냉정하게 비교해야 한다. 단순히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겼을 때 최종적으로 내 자산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무엇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부동산 정비사업은 법률과 경제가 복잡하게 맞물린 현실 비즈니스이고, 시간이 곧 돈이다. 법원은 원칙적으로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판단할 뿐,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제적 손실까지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조합원의 통장 잔고를 대신 지켜주지도 않는다.
조합원 분담금 갈등의 가장 완벽한 해결책은 승소 판결문이 아니라, 투명한 정보 공개와 철저한 공사비 검증을 통한 합리적인 타협이다. 무작정 칼을 빼 들기 전에, 내가 휘두른 칼이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의 자산마저 베어버릴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writer 장종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