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을 신탁회사에 묶어두고 이자만 받으라니요?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투자를 하는 게 낫지, 집주인 입장에서 메리트가 전혀 없습니다.” (서울 마포구 임대인 김모 씨)
정부가 전세 사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다음 달 ‘전월세 안심신탁’ 제도 도입을 예고했으나 현장의 반응은 기대보다 싸늘하기만 하다. 보증금 운용의 자율성이 훼손되고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제도의 연착륙 여부에 의문 부호가 찍히고 있다.
27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전월세 안심신탁’은 임대인이 세입자로부터 받은 보증금을 개인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공신력 있는 신탁회사나 금융기관에 예치·신탁하도록 하는 제도를 골자로 한다. 계약 기간 동안 보증금을 안전하게 보호함으로써 최근 기승을 부리는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태’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하지만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게도 임대인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자금 유동성 상실’과 ‘낮은 수익률’이다. 현재 국토부는 임대인에게 약 연 4.5% 수준의 이자수익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임대차 시장에서 보증금은 집주인에게 단순한 부채가 아니라 중요한 자금 운용 수단이기도 하다. 계약 갱신, 주택 수리, 타 부동산 투자나 자금 융통을 위해 유연하게 활용되던 보증금이 신탁 계좌에 묶일 경우 집주인의 재무적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도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짚는다. 강제성이 없는 자율 참여 방식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없다면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시장에서는 자율 참여로 시작하더라도 향후 조건들이 점진적으로 강제화될 가능성을 더 큰 문제로 우려하고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임차인 입장에서는 사실 크게 달라지는 게 없지만 임대인 입장에서는 사적인 금융 영역에 공적 규제가 개입해 버리는 꼴이라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는 ‘전세를 놓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인책을 마련한다 해도 철저한 사적 영역인 전세를 공적 자금 개념으로 묶으려는 시도 자체를 임대인들이 납득하기는 어렵다”며 “제도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오히려 전세 소멸과 월세화 가속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효성 논란 속 정부 대책 보완 목소리 커져
다만 정부는 세입자의 주거 안정성을 높이고 전세 사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안전한 거래 구조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초기 진통은 불가피하며 장기적으로는 임대차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시장에서는 신탁 수수료 감면 혜택, 세제 지원, 유동성 제약을 상쇄할 만한 금융 상품 연계 등 임대인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매력적인 당근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재정경제부와 협의를 거쳐 임대인 소득에 대한 세제 지원 방안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안심신탁에 참여한 임대인이 서울 등 규제지역에서 지방으로 이주할 경우 추가로 연 1~3% 수준의 주택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실효성 있는 유인책을 마련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