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서울시 패싱' 논란
500가구이하 정비구역 지정권
與, 서울시→구청 이양 추진
18년 표류했던 창신9·10구역
구청장 바뀐 뒤 인허가 스톱
북아현 3구역도 구청과 갈등
현장선 "사업 더 늦어질 우려"# 서울 종로구 창신9·10구역 주민들은 조만간 사업시행자 지정을 촉구하는 탄원서 2500여 장을 종로구와 구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지난 6월 법정 동의율을 넘겨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지만 지방선거로 구청장이 바뀐 뒤 두 달 넘도록 지정고시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창신9·10구역은 2007년 뉴타운으로 지정됐다가 2013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뉴타운 지구 전체가 해제된 창신·숭인 일대에 있다. 도시재생사업을 거쳐 2022년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됐고 지난해 11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18년을 돌아 재개발이 본궤도에 오른 지 7개월 만에 다시 구청 인허가 단계에서 멈춘 셈이다.
정부·여당이 서울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의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로 넘기는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 등 핵심 인허가권을 이미 가진 구청과 조합 간 갈등으로 멈춘 사업장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권한을 더 넘기면 구청장 판단과 행정 역량에 따라 사업이 오히려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4일 더불어민주당 등에 따르면 당정은 지난 2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서울 500가구 이하 정비사업은 자치구청장이 정비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6·3 지방선거 당시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내건 공약으로, 선거 이후 서울시구청장협의회가 건의하면서 당정이 받아들였다.
◆ 구청 인허가 갈등에 정비사업 표류
그러나 구청과 갈등으로 인허가가 지연된 사례는 적지 않다. 서대문구 북아현3구역에선 구청이 사업시행계획 변경인가 신청을 1년6개월간 검토한 끝에 반려했다. 조합이 처리 지연을 이유로 낸 행정심판에서 '4개월 안에 인가 여부를 결정하라'는 판단이 나온 뒤였다. 반려 처분은 후속 행정심판에서 적법하다는 판단을 받았지만 구청과 조합의 충돌은 조합장 해임과 집행부 공백으로 이어졌다. 북아현3구역은 2008년 조합설립인가를 받고도 18년째 사업을 마치지 못하고 있다.
동작구 일부 정비사업장에서도 전임 구청장이 조합과 비상대책위원회 간 갈등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조합장은 "정비사업에서 구청장은 사실상 절대적인 갑"이라며 "정비구역 지정·해제 권한까지 넘기면 사업 속도가 구청장 판단에 좌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자치구가 정비사업 9개 절차 가운데 7개를 이미 맡고 있어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추가로 넘겨도 사업 기간 단축 효과가 크지 않다고 반박한다. 서울시가 담당하는 것은 정비계획 결정·고시를 위한 심의와 사업시행계획인가 전 통합심의 두 단계다.
◆ 서울시 "적용 대상 16% 불과"
현재 추진 중인 500가구 이하 정비사업 193곳 가운데 정비구역 지정 단계는 31곳으로 16%에 불과하다. 나머지 84%는 이미 자치구가 담당하는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
서울시는 권한 이양이 오히려 사업지를 500가구 이하로 쪼개거나 일부 지역을 제외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치구마다 공공기여와 용도 기준이 달라질 경우 난개발이나 특혜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시가 담당하는 초기 심의 속도는 과거보다 크게 빨라졌다. 도시계획위원회 패스트트랙인 수권분과위원회를 활용해 최근 3년간 정비구역 지정 안건 130건을 평균 84일 만에 처리했다. 2024년 도입한 정비사업 통합심의 역시 64건 가운데 62건을 평균 32일 만에 통과시켰다.
자치구별 정비사업 경험과 전문성 차이도 변수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정비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던 자치구가 적지 않다"며 "사업이 많은 구와 경험이 거의 없는 구가 같은 속도와 기준으로 정비구역 지정 업무를 처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적 논란도 있다. 6·3 지방선거 이후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7곳을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차지하면서 일각에서는 '오세훈 힘 빼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표 정책인 신속통합기획 사업지가 밀집한 지역에서 지방선거 당시 강세를 보인 만큼 정비사업 권한을 둘러싼 당정과 서울시의 대립이 정치적 주도권 다툼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자치구로 권한을 넘기면 사업이 빨라진다는 정량적 근거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현장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정치 상황에 따라 권한 기준을 바꾸면 결국 주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 한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