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김윤덕 50분 첫 회동
金 "훼손지 활용하자" 제안에
吳 "미래 공원용지 절대 안돼"캠프킴·경리단 용지 등 역제안
국제업무지구·규제완화 묶어
내주 2차 회동서 '빅딜' 주목
與野, 용산특별법 처리 미뤄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20일 용산공원을 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마주 앉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오 시장은 회동 직후 "결론적으로 용산공원에 관해서는 평행선"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도 "입장차만 확인했다"며 "다음주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주택 공급과 공원 보존이라는 물러서기 힘든 정책 충돌이다. 하지만 양측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보면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김 장관은 서울 핵심지의 공급 물량을, 오 시장은 용산의 녹지를 지켰다는 명분을 얻어야 한다. 기존 녹지를 보존하면서 기개발지나 공원 밖 용지를 활용한다면 두 목표가 만나는 지점도 생길 수 있다. 매일경제는 상대방의 선택까지 고려해 각자가 얻는 이익과 손실을 따져 최적의 전략을 찾는 '게임이론'을 통해 양측의 협상 여지를 분석했다.
◆합의 급한 정부, 여유 있는 오세훈
게임이론에서 각자의 선택에 따라 얻는 이익과 손실을 '보수(payoff)'라고 한다. 현재 용산 게임에서는 양측의 보수가 비대칭적이다. 협상 결렬에 따른 부담은 정부가 상대적으로 크다.
정부는 용산에서 의미 있는 공급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서울 핵심 입지에서 공급을 늘려야 하고 8·13 공급대책에서 내건 '신속공급' 의지도 입증해야 한다. 정부의 최선은 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상당한 주택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 장관이 이날 "청년과 신혼부부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 문제만은 시장님과 힘을 모아보자는 취지로 얘기를 나눴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면 오 시장은 협상이 깨져도 잃을 게 상대적으로 적다. 정부가 밀어붙이면 '미래 세대를 위한 녹지를 지키는 시장'이라는 명분으로 맞설 수 있고, 정부가 물러서면 용산공원을 지켜냈다는 정치적 성과를 얻는다. 오 시장이 회동 후에도 "용산공원 본체 용지에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은 서울시가 어떤 경우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배경이다.
정부에는 합의의 가치가 큰 반면 오 시장에게는 협상 결렬도 감당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점에서 현재 협상력은 서울시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셈이다.
◆ 같은땅, 金 '훼손지' 吳 '미래 공원'
정부가 최근 용산공원 개발 범위를 좁히기 시작한 것도 이런 협상 구도와 맞닿아 있다. 서울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를 늘려 협상 공간을 만드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김 장관은 지난 14일 "용산어린이정원은 좁은 개념"이라며 용산공원 전체를 놓고 주택 공급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원 훼손 논란과 주민 반발이 커지자 19일 국회에서는 "용산공원 전체 녹지를 대상으로 집을 짓겠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 대신 장교숙소와 군인아파트, 옛 방위사업청 용지 등 이미 건축물이나 시설이 들어선 곳을 후보지로 거론했다. 김 장관은 이날도 "이미 훼손된 곳을 정화해 제한적으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공급하겠다는 것"이라며 "용산공원을 지키는 것과 주택 공급은 양립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 시장은 이 카드도 일단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군인아파트와 장교숙소, 방위사업청 용지도 본체 용지이자 공원화하기로 한 면적"이라며 "현재 건물이 있으니 괜찮다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 기개발지가 향후 타협의 교집합이 될 수도 있다. 어린이정원 등 현재 녹지는 보존하고 일부 기개발지를 주택용지로 활용한다면 김 장관은 공급 물량을 확보하고 오 시장은 기존 녹지를 지켰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이 캠프킴과 경리단 용지, 한국은행·외교부 주차장 등 용산공원 밖 국공유지 활용을 역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조건 반대할 경우 청년주택 공급을 대안 없이 막는다는 정치적 부담이 생긴다. '용산에 집을 짓지 말자'가 아니라 '공원 녹지 대신 다른 땅에 짓자'는 전략이다. 김 장관도 "각자 자기 입장만 고수해서는 논의할 수 없으니 한 발씩 물러서서 대화해보자는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오 시장 역시 "오늘 만남으로 결렬된 것은 아니다"며 다음주에도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 다음주 '빅딜' 2차전
김 장관에게도 협상 카드는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주택 물량부터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까지 서울시가 정부와 협의해야 할 현안이 적지 않다. 하나의 사안에서 접점을 찾기 어렵다면 여러 현안을 묶어 서로 원하는 것을 교환할 수 있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이슈 연계(issue linkage)'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 서울시는 8000가구, 국토부는 1만가구 공급을 제시하고 있다. 오 시장은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의 한시적 완화와 민간 정비사업 용적률 상향, 임대주택 비율 완화도 정부에 요구했다. 김 장관 역시 민간 정비사업 용적률 문제는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용산공원 안에서 정면 충돌하는 대신 기개발지와 공원 밖 국공유지에서 공급 물량을 확보하고, 정부가 서울시의 정비사업 규제 완화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는 식으로 협상판을 넓힐 수 있는 셈이다.
여야도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용산공원 특별법 등 주택 공급 관련 법안 처리를 다음주로 미루기로 했다. 김 장관과 오 시장이 추가 협상을 예고한 가운데 정치권도 일단 협상 결과를 지켜볼 시간을 확보한 모양새다.
결국 다음 회동의 관전 포인트는 협상의 판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느냐다. 김 장관은 공급 물량을, 오 시장은 녹지 보존이라는 명분을 얻어야 한다. 용산공원 안에서만 보면 충돌하지만 기개발지와 공원 밖 용지, 정비사업까지 한 테이블에 올리면 양측 모두 가져갈 몫이 생긴다.
[임영신 기자 / 박소은 기자 / 한창호 기자 / 류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