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기술 발전에도 외벽 태반 무채색
지자체별 경관심의 기준 상이
튀는 색채보단 주변환경과 조화 중요
커튼월·입체 파사드 등 설계로 차별화
산업화 시대에 가장 많이 지어진 건축물은 단연 아파트다. 좁은 땅에 아파트 만큼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주거공간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만큼 도시 미관은 삭막해졌다는 점이다. 천편일률적인 회색 도시인 서울의 단조롭게 늘어선 개성 없는 건물은 미관을 해쳤고, 도시 정체성도 담아내지 못했다.
최근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개인 취향을 존중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서울에는 특화설계로 개성을 살린 건축물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외벽 색채는 여전히 설계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다양한 색상의 개성있는 아파트, 예를 들어 검은색이나 빨간색 아파트가 없는 것은 미관보다는 실용성과 규제, 비용 문제 때문이다. 신축 아파트의 외관 색채는 지자체별 자체 경관심의를 통해 결정된다.
서울의 경우 시공사의 색채 계확을 지자체가 주변 환경과의 조화와 영향 등 여러 요소를 평가해 결과를 서울시가 최종 결정하는 구조다. 외관 색채를 기존 단지와 차별화하려 해도 심의에서 수정·재심의 요구가 많아 다양성 적용에 한계가 있다고 건설사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아파트 외벽 색상이 밝은 무채색에 집중되는 것은 여러 실용적인 이유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건축협회 한 관계자는 “밝은 색은 햇빛을 반사하여 여름철 냉방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유리하다”면서 “검은색 등 짙은 색은 열 흡수가 많아 냉방 부하를 높이고, 내구성이나 유지 관리 측면에서 불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밝은 색은 자외선에 의한 변색이 덜 눈에 띄고, 콘크리트 표면의 미세한 오염이나 균열이 덜 도드라져 보인다”면서 “이는 외벽을 오랫동안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재료·시공 용이성과 비용도 문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콘크리트 기본 색상이 회색이라 밝은 색 페인트 사용이 기술적, 비용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다”면서 “도시 경관과의 조화도 중요한데, 밝은 색은 주변 환경과 무난하게 어울리며 대규모 단지에 통일감을 주어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색상이 다양하면 도시가 더 활기차 보일 수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과 문화적인 인식이 아직까지는 그 다양성을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색채의 다양성이 장점만 있는 것는 아니다. 과할 경우 미관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일례로 경기 화성시 향남2지구에서 올해로 입주 9년차를 맞은 한 아파트는 지난해 시공사 측의 아파트 외관 도색 제안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온통 밝은 색깔로 칠해진 경남 창원의 기존 아파트 사진을 본 입주민들 사이에서 다소 촌스러워질까봐 우려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당시 한 입주민은 아파트 단톡방에 “직장 생활 15년 만에 드디어 내 집 마련해서 잘 살고 있었는데 아파트 색깔이 이러면 정말 좌절할 것 같다”며 “무슨 군대 관사보다도 못한 색깔”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아파트 측벽 컬러 세월 따라 달라져”
최근 아파트 측벽부 그래픽이 사용됐던 2003년부터 2022년까지 20년의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한 내용을 정리한 국내 아파트 디자인 분석 자료가 발간돼 눈기을 끈다.
노루페인트 색채지원팀에 따르면 외벽 색채는 1980~1990년대는 회색 등의 외벽에 단순한 색상의 로고가 주를 이뤘다. 이는 당시 건축 기술과 자재의 한계, 비용 절감의 이유로 외관의 미적 관점보다 기능성과 내구성에 더 중점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2000년대에 들어 주조색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고명도, 저채도 계열이 사용됐다.
2020년대에는 뉴트럴 컬러의 활용이 늘어났다. 보조색 또한 주조색의 흐름에 맞춰 부드럽게 2~3톤 정도 차이를 둬 사용됐다. 강조색은 2000년대 초반에는 명도와 채도 차이가 크지 않았으나 2010년대에는 중명도, 중채도의 사용으로 확대되고 2020년대에는 저명도, 고채도의 사용으로 대비가 강해졌다.
건설업계는 각기 다른 지자차별 색채 기준에 따른 적용의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 커튼월룩(Curtainwall-look), 곡선형 파사드, 입면 분절 등 다양한 외관 설계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커튼월 룩은 건물 외관의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유리로 외벽을 마감하는 디자인 방식이다. 기존 상업용 고층 건물에 주로 쓰이던 ‘커튼월(curtain wall)’ 공법에서 파생됐다.
건물의 하중을 콘크리트 외벽이 아닌 기둥과 보로 분산시키고 대신 외벽을 유리로 감싸는 시공 방법이다.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이 마치 커튼을 두른 듯한 외관을 연출한다. 롯데월드타워와 63빌딩 등이 이 공법을 적용한 대표 건축물이다.
커튼월 공법으로 시공하면 건물의 외관이 현대적이고 세련돼 보일 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양생(굳히기) 시간을 단축해 공기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와 함께 타일이나 석재와 달리 유리는 변색과 변형이 없고 필요시에는 손상된 유리만 교체하면 되기 때문에 유지보수에도 용이한 장점이 있다.
다만 유리를 통해 많은 햇빛이 유입되면서 건물의 내부 온도가 크게 상승하는 데다 유리는 콘크리트보다 단열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냉난방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는 단점도 공존한다.
입체형 파사드는 평면적인 건물 정면에서 벗어나 곡선이나 입체적인 입면 분절을 적용해 단지의 리듬감과 조형미를 강조한 설계다. 건물일체형 태양광 발전(BIPV)은 디자인적 요소와 친환경 에너지를 결합한 최첨단 외관 설계 방식을 말한다. 포스코이앤씨는 최근 서울 서초구에 선보인 ‘오티에르 반포’에 국내 최초로 BIPV를 적용했다.
한 주택업계 관계자는 “외관 디자인은 아파트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로, 수요자들이 단지를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라며 “최근 커튼월룩이나 측벽 특화처럼 시각적 완성도를 높인 단지들이 주택시장에서 수요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아파트 재도장 시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아파트 외벽 사진을 5분 만에 실사형 재도장 시안으로 만드는 인공지능(AI)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아파트 사진을 기반으로 약 5분 만에 실사형 재도장 시안을 만들어준다. 그동안에는 아파트 재도장은 시안 제작에만 1~3일 이상이 소요됐다. 초기 방문이나 미팅 단계에서는 충분한 시각 자료를 제시하기 어려워 결정이 늦어지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이 서비스를 활용하면 복잡한 그래픽 작업이나 사전 준비가 없어도 관리사무소 관계자와 입주민이 재도장 이후 모습을 즉시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비교·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