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의 신’ 한형기 인터뷰 상편
“한형기도 당했네요.”
한형기 HK미래주택연구원 대표가 지역주택조합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고 꺼내자 이 말부터 튀어나왔다. 아크로리버파크와 래미안 원베일리를 잇따라 성공시킨 그가 지역주택조합 사기를 당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가 두 시간을 넘어가면서 매경플러스는 지역주택조합 사기가 그를 키운 자양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복잡한 재건축 과정에서 디테일을 챙기는 철저함, 그리고 전 재산을 걸고 재건축을 끌고 가는 절박함, 이는 한 대표를 ‘재건축의 신’으로 불리게 한 원동력이다. 그가 스스로 말하는 두 번의 큰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 대표는 없었을지 모른다. 매경플러스는 최근 래미안 원베일리 상가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한형기를 키운 두 번의 시련
-‘재건축의 신’이라고 불리는데 어떤 투자를 해왔는가.
▶ 내 첫 부동산 투자는 상가 한 채였는데, 4000만원을 그대로 날렸다. 그때 전 재산이었다. 시행사가 부도 내고 미국으로 도망갔다. 2년 동안 자기가 세를 받아 챙긴 다음에 튄 거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상가는 비어 있다. 1년 재산세가 1만2000원씩 나온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공부했다. 건설사 현장 직원이었으니까 토요일과 일요일에 시간이 났다. 인천 현장에 있을 때는 인천 주변 아파트와 상가를 다 돌아다녔다. 여의도 빌딩 공사에 들어갔을 때는 여의도 주변 아파트를 다 봤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책 보고 배운 것도 아니다.
- 한형기만의 비결은 뭔지 궁금하다.
▶ 한 번 잃어본 사람은 계약서를 본다. 19세대 미만은 일반분양을 안 하고 임의 분양을 한다는 사실, 그 19세대를 대행사가 어떻게 굴리는지, 임대료를 어떻게 빼돌리는지, 안 당해본 사람은 이게 안 보인다. 당해본 사람은 보인다.
- 그것 말고도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고 들었다.
▶ 1994년 지역주택조합에 멋모르고 들어갔다. 잠원역 옆에 165세대 한 동짜리였다. 그때 거기 코미디언 구봉서 씨도 있었고 원로 여성 탤런트도 있었다. 위치가 좋아서 막강한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이미 상가에서 한 번 당한 뒤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대행사 운영 방식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또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가까이 대행사와 부딪혔지만 풀리지 않았다. 결국 조합원 전체에게 직접 알리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하다.
▶ 조합원 명부를 확보해서 165명 전원에게 등기로 7장짜리 편지를 보냈다. 종로 식당으로 다 모이게 했다. 95% 가까이 왔다. 나는 한 달 반 조합장 대행을 했고 그렇게 살려서 1997년 10월 1일에 입주를 시켰다. IMF(국제통화기금)구제금융 신청 한 달 반 전이다. 그때 아니었으면 또 공중분해될 뻔했다.
- 한 달 반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하다.
▶ 인허가의 모든 과정이다. 구청, 시청, 국토부, 모든 단계를 혼자 다녔다. 어느 부서가 어떤 결재 라인을 가지고 있는지, 어디서 막히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서류가 어떤 단어로 쓰여 있어야 통과되는지, 그걸 한 달 반에 통째로 익혔다. 그 뒤로 어떤 인허가 절차 앞에서도 막힌 적이 없다.
IMF 외환위기에 역발상 투자를 하다
- 그렇게까지 밀어붙인 동기가 어디에 있었나.
▶ 전 재산이다. 나도 165세대 안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약속이다. 종로 식당에 95% 가까이 모인 사람들 앞에서 내가 살리겠다고 했다. 약속한 이상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이게 내 성격이다.
- IMF 외환위기는 어떻게 극복했는가.
▶ 나는 거꾸로 갔다. 한남대교 남단 설악아파트, 지금 잠원 롯데캐슬갤럭시 자리에 있던 옛 아파트다. 재건축 물건 두 채를 샀다. 3억5000만원 가던 게 한 채당 1억6500만원까지 떨어진 단지였다. 우방이 시공사였는데 화의(법원이 중재하에 채권자와 채무자가 변제계획을 합의해 채무를 정리하는 절차로, 파산과 달리 회사가 청산되지 않고 계속 운영될 수 있다)에 들어가서 이주비도 못 주는 상황이었다.
다들 거기서 손을 뺄 때 두 채를 안았다. 집 담보로 융자 받았다. 연 15% 금리였다. IMF니까 그 금리였다. 1억 빌리고, 내 현금 3000만원 넣고 상대방 전세와 융자 끌어안고 그렇게 두 채를 안았다. 신화아파트를 정리한 종잣돈이 그때 들어갔다.
- 확신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 신화아파트에서 인허가를 통째로 익혔으니까. 우방이 시공사로 있는 한 안 된다는 게 보였다. 그러면 우방을 빼고 새 시공사로 갈아치우면 4년 안에 입주가 가능하다는 산수가 나왔다. 본사로 가서 정리하고 롯데를 시공사로 데려왔다. 내가 산 날부터 6개월 만에 이주가 시작됐고 정확히 4년 만에 입주했다. 한 채당 1억6500에 산 것이 한 채당 9억6000만원에 팔렸다. 2002년 11월이다. 양도세도 한시 면제였다. 건설사 동료, 친구, 친척, 가까운 사람 20명한테 권했다. 한 명도 안 샀다. 다들 나를 미친놈이라고 했다. IMF에 무슨 부동산이냐고. 한 사람도 못 따라왔다. 공부가 안 되면 확신이 없고, 확신이 없으면 IMF 때 융자를 안 받는다. 그게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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