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생 첫 여성 조경가 정영선
"오늘 아침에도 직접 화단에 꽃을 심고 왔습니다. 장갑을 끼면 손의 감각이 둔해져 맨손으로 심었지요."
1941년생, 곧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정영선 조경가는 여전히 맨손으로 흙을 만진다. 장갑을 끼면 모종이 작아 온전히 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조경가는 매일 땅을 들여다보고 손으로 만지며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본인만의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정 조경가는 어릴 적 자랐던 과수원과 집 풍경으로부터 막연히 조경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이는 그를 서울대 농학과로 이끌었는데, 당시 한국 사회엔 조경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전이었다. 졸업 후 잠시 잡지사 기자로 활동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1973년 당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처음 개설된 환경조경학과 1기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조경 여정이 시작됐다.
1980년에 한국 1호 여성 조경 국토개발기술사가 됐다. 이후 조경설계 서안 대표와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2023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조경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프리 젤리코 상을 받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준공연도 기준 예술의전당(1988), 샛강생태공원(1997), 호암미술관 희원(1997), 영종도 신공항(2001), 선유도공원(2002), 서울아산병원(2008), 서울식물원(2019) 등이 있다.
취미가 일이 되면 아무리 좋아했던 일도 싫증에 빠진다는 말이 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경과 함께해온 정 조경가는 아직도 조경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은 듯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이 표현이 정 조경가 미학의 핵심이다. 기존 작품과 최근 작품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그는 "별로 변한 게 없다. 옛날에는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한다는 식의 변화는 없다"며 "그 자리에 맞는 것을 했고, 내 고집은 별로 없다"고 답했다.
정영선 조경가
△1941년 경상북도 경산 출생 △1964년 서울대 농과대학 농학과 졸업 △1975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졸업 △1975년 청주대 조경학과 교수 △1980년 여성 첫 국토개발기술사 취득 △1987년~ 조경설계 서안주식회사 대표 △1999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2010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석좌교수
[이용안 기자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