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정 혁신상 정영선 조경가, 정몽규 HDC그룹 회장 대담
진행 = 이지용 부동산부장건축은 구조를 세우고, 정원은 그 구조에 숨을 불어넣는다. 한 사람은 도시라는 공간의 형태를 만들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도시 공간에 시간의 변화를 심는다.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 작가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HDC그룹 정몽규 회장은 각자 다른 영역에 서 있지만 공간을 대하는 감각만큼은 닮아 있었다. 어디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보다 그 자리가 원래 어떤 결을 품고 있었는지, 또 그 결을 살려 어떤 맥락을 만들지 묻는 태도다.
포니정 혁신상을 계기로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대화는 단순히 건물과 나무 이야기에 머물지 않았다. 이 대담은 건축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 후대가 100년 후 어떤 도시,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자리였다.
- 조경과 건축 모두 땅 위에서 출발한다. '좋은 땅'이란 어떤 곳인가.
▷정 조경가=주변에 좋은 산과 강, 들판 등 훌륭한 자연경관을 갖춘 곳이나 넓은 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곳 등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도시에선 이런 공간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저는 주변의 좋은 환경을 더 잘 드러나게 하고, 상처 입은 땅을 보듬는 작업을 해왔다. 좋은 땅을 만들어 가는 게 제 일이었다.
▷정 회장=좋은 땅이란 단순히 입지만 좋은 곳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발 사업을 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건 그 땅이 갖고 있는 시간과 맥락이다.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갖춘 땅이 우선 좋은 땅이라고 생각한다.
- 건축과 조경은 효율성과 지속성의 가치가 충돌한다. 둘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나.
▷정 조경가=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관계다. 건축과 조경이 상반되는 가치를 지향하는 것 같지만, 사실 두 분야 모두 건설업이라고 하는 같은 범주 안에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건축과 조경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저는 건축이 아무리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이 땅에 맞는 풍경으로 바꿔주거나 주변과 조화시키는 데 노력했기에 건축과 부딪힐 일이 드물었다.
▷정 회장=아직도 건축물이 만들어진 후 조경을 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과 조경은 초기 기획 단계부터 같이해야 한다. 이렇게 조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정 선생님이 포니정재단의 혁신상을 수상하신 게 아닌가 싶다.
- 정 조경가님 작품엔 '치유'와 '회복'의 감각이 강하게 배어 있다. 좋은 조경은 어떤 것인가.
▷정 조경가=선유도공원에서의 경험이 있다. 준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한 여성분을 만났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양화대교를 건너다가 선유도공원을 걸으며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신 분이었다. 저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곳의 자연이 그분의 마음을 다잡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좋은 공간은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고도 믿는다. 개인적으로 가족을 간병하던 시기를 겪으며 병원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 알게 됐다.
- 회장님이 생각하는 '좋은 개발'이란.
▷정 회장=건설 이후에도 고객을 위해 계속 상품 관리와 운영 서비스를 제공하며, 좋은 이웃이 되는 동반자적 개발이 좋은 개발이라고 생각한다. '수원 아이파크시티'처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을 품은 도시를 만들면 지역사회 전체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도시를 만드는 대규모 개발은 큰 이익을 내면서도, 규모의 경제를 통해 관리비까지 줄여준다.
- 정 조경가님은 '땅이 품고 있는 시간과 기억'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개발 압력이 큰 서울에서 기억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새 공간을 만드는 일이 가능한가.
▷정 조경가=서울은 개발 압력이 엄청난 도시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기억을 남기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옛길과 가로수, 소소한 정원과 물길, 마을의 흔적을 형태로 남기거나, 그 자리에 살던 상징적인 식물을 남기는 일로 대신해 왔다. 자연의 힘은 대단하기에 자연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면 사라진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 서울은 옛 문화와 풍경 등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도시다. 동시에 하나의 복합적인 작품이다. 이런 가치가 계속 남아 있으면 한다.
- 정 조경가님은 많은 작품을 완성하셨는데, 새롭게 구상 중인 것이 있는지.
▷정 조경가=하고 싶은 작업이 하나 있다. 한강의 발원지 강원도 태백산부터 시작한 이 강에는 어떤 역사가 있는지, 어떻게 흐르는지, 그 속에서 서울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을 책으로 만들어서 후대에 남기면 어떨지 생각하고 있다. 조경가로서 단순히 조경만 하는 게 아니라 보존하고 가꿔야 할 곳을 잘 정리하는 게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이용안 기자 정리 / 사진 한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