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파고 건물짓다 매장유산 나오면 원인자 부담
유산훼손의 원인 제공한 자가 발굴조사 비용 부담
재산권 침해 논란...헌법재판소 2010년 합헌 결정
개인 단독주택·농어업시설엔 국가 발굴비용 지원
보존조치 비용은 작년부터 국가가 지원 가능
외국도 점차 원인자 부담서 공공부담 확대 추세
풍납토성특별법 재정당국 반대로 1년 넘게 국회 계류
내 땅에 건물을 지으려고 터파기 공사를 하는데 매장 문화재가 발견되면 국가에는 좋은 일이 될 수 있지만 땅 주인은 속이 탄다. 어떤 값비싼 유물이 나와도 그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데, 유물 발굴을 위한 비용은 땅 소유자나 사업 시행자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같은 비용 분담이 합리적인 것일까.
법제부터 살펴보자. 땅을 파다가 유물이나 유적이 나올 수 있다. 우리 법령은 이를 매장유산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된 절차는 크게 세 가지다. 땅을 파지 않고 문헌을 찾아보거나 주민 인터뷰를 하는 등 매장유산이 있을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를 지표조사라 한다. 이후 실제 땅을 파서 매장유산을 캐내는 과정이 발굴조사이고, 발굴이 끝난 후 이를 그대로 덮어 보존하거나 안전하게 옮기는 것을 보존조치라 한다.
우리나라는 지표조사와 관련된 비용을 이미 국가나 공공기관이 부담하고 있어서 이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발굴조사와 보존조치에 들어가는 경우 개인이 단독주택을 짓거나 농어업 시설 등 영세한 규모가 아닌 한 개발사업자에게 비용을 부담 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아파트단지, 상업시설, 산업단지 등을 조성할 때는 사업 시행자가 모두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매장유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는데 발굴비용 및 보존조치 비용을 사업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 그간 많은 논란이 있었다. 국민 일반의 상식 내지 법감정과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업시행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먼저 매장유산이 훼손될 위험을 발생케 한 사업시행자가 원인제공자라는 논리다. 당시 헌재는 매장문화재가 훼손될 위험은 가만히 있는 땅에서 저절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업시행자가 건설공사(개발)라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은 정당하다고 봤다.
다음으로 개발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킴으로써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땅 속에 묻힌 소중한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도 폈다. 또 발굴조사 단계에서 발굴비용이 개발이익 보다 커서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이를 중단하고 사업을 포기할 수 있는 선택권도 사업 시행자에게 주어진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지도 내세웠다.
헌재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그간 법령 개정을 통해 국가나 공공기관의 부담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먼저 지표조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현재 전액 국가나 공공기관인 사업시행자가 부담하고 있다. 최소한 지표조사 단계에선 민간 사업자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큰 비용이 투입되는 발굴조사 단계가 문제다. 법령에 따르면 아파트단지 건설이나 대형상업시설, 산업단지 조성 등에는 원인자부담 원칙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비용을 부담한다. 개인이 단독주택(대지 792㎡ 이하, 연면적 264㎡ 이하)을 짓거나 농어업 시설, 영세한 소규모 개인 사업장 및 공장 건설 시 발생하는 발굴조사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보존조치에 따른 비용도 문제다. 마찬가지로 아파트 건설이나 대규모 상업시설의 경우 사업 시행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는 성토작업과 매장유산의 운반 및 재설치에 따른 비용, 잔디 및 수목 식재, 안내판 및 전시물 제작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다행히 2024년 8월부터는 일반국민의 단독주택 건설 등에는 보존조치에 따른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도록 했고, 2025년부터 예산에도 반영됐다. 다만 예산 여건에 따라 전액이 지원되지 않을 수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입법례를 보면 우리와 비슷하지만, 점차 국가나 공공기관의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다.
먼저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의 자금이 투입되거나 승인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 사업 시행자가 매장문화재에 대한 평가 및 발굴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반면 환경 규제 등 연방의 개입이 없는 순수한 사유지의 경우 소유자에게 발굴비용을 부담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사유재산권이 더 강하게 보호된다.
일본은 영리 및 대규모 개발 사업의 경우 사업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지만, 소규모 개인 주택은 공공이 부담하고 있다. 대기업의 상업적 개발이나 수익성 사업은 원인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지만, 개인이 주택을 건설할 때는 전액 또는 상당부분을 국가나 지자체가 보조한다.
독일은 발굴비용이 토지의 가치나 개발이익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경우 법원이 인정하는 한도를 초과하는 비용은 주정부가 이를 부담하도록 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인한도가 있다는 논리다.
현재 국회에는 ‘풍납토성 보존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된 지 1년이 넘도록 소관상임위에서 계류중이다. 쟁점이 되는 내용은 풍납동 매장유산의 발굴 경비를 국가가 부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점이다. 사업의 성격과 규모에 상관없이 국가가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재정당국인 기획예산처가 반대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은 1997년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백제 유물이 발견된 이후, 30년 가까이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고 주민들의 재산권이 침해받는 상황이다. 건축물 신축 금지, 지하 굴착 제한 등 규제가 시행되면서, 주거환경이 심각하게 악화됐다. 이로 인해 풍납동은 송파구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했고, 인구 감소와 지역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게 법률안을 발의한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의 판단이다.
박 의원실 설명에 따르면 예산처는 풍납동에만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경주 등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2010년 헌법재판소는 “땅에서 나온 유물의 주인을 찾지 못하면 결국 모두 국가소유가 되는데, 유물은 국가가 가져가면서 그것을 파내는 막대한 비용만 개발자에게 전액 부담시키는 것은 국가의 문화재 보존 의무를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재판관 2인의 소수의견을 공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