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착공 코앞인데 "이사갈 집이 없다"
서울 대단지 '전세 0건' 속출
수급 불균형 文정부 이후 최악
여의도 등 정비사업 우려 커져
분당 등 1기 재건축 착수 땐
수도권 전체 임대차 불안 확산올해 10월 이주를 앞둔 서울 여의도 대교아파트 조합원 A씨는 재건축 기간 임시로 살 집을 구하느라 큰 불편을 겪었다. 주변에서 전월세 물량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여의도 인근과 목동 전세가격도 크게 올라 있었다. 결국 그는 목동에서 전용면적 59㎡인 빌라를 간신히 구했다. A씨는 "아이들 학교 때문에 여의도에서 해결하려 했지만 잘 안 됐다"며 "목동에도 아파트 전세 매물 자체가 없어 빌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재건축·재개발(정비사업) 현장에서는 관리처분인가 이후 이주·철거를 앞둔 사업장 곳곳에서 이사 갈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조합원과 세입자들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전월세 매물은 부족하고, 나와 있는 물건도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정비사업 이주 수요는 주변 주택 임대차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다. 특히 매물 부족 등 전월세 시장 자체가 불안하면 파급력은 더 커진다. 실제로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와 3주구, 신반포4지구 등 6500여 가구가 차례로 이주하자 서초구는 물론이고 동작구·과천 등 주변 전셋값이 크게 흔들린 바 있다. 당시 역시 임대차법 시행 직후로 전월세 시장이 극도로 불안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착공 물량은 3만299가구로, 2022년 4만4894가구 이후 가장 많다. 그만큼 선행 절차인 이주도 본격화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현재 전월세 시장 지표가 2021년 전세 대란 시기와 맞먹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점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이달 6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76.7이었다. 전세난이 극심했던 2021년 8월 2일 184.7 이후 4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100을 넘으면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극심한 수급 불균형 상태라는 의미다. 매물도 계속 줄고 있다.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오피스텔 전세 매물은 지난 11일 1만5476건으로, 올해 초 2만3060건에서 32.9% 감소했다.
한강을 기준으로 보면 강북 전세난이 더 심각하다. 강북 14개 구의 평균 전세수급지수는 185.6으로 강남 11개 구의 168.8보다 높았다. 지난해 8월만 해도 강북이 강남보다 낮았지만 더 빠른 속도로 올라 앞질렀다. 전세 시장에 각종 대출 규제가 시행되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으로 실수요가 몰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매일경제신문이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지난 14일 기준 서울 2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 93곳의 전세 물건을 조사한 결과도 비슷했다. 전체 물량 4328건 가운데 강남 3구를 제외한 자치구 물량은 870건, 20.1%에 불과했다. 비강남권 대단지에서 전세 물건이 '0건'인 곳도 5곳에 달했다. 도봉구 북한산아이파크, 성북구 월곡두산위브, 동대문구 장안현대홈타운1차 등이 대표적이다. 전세 물건이 5건 이하인 단지는 35곳으로 전체의 37.6%를 차지했다. 송파구 1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강남권이었다.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면서 가격도 상승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2월 넷째 주부터 7주 연속 오름폭을 키웠다. 올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누적 상승률은 1.77%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배를 넘는다.
전문가들은 전월세 시장이 비교적 나았던 강남 3구도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래미안 원페를라, 잠실래미안아이파크, 잠실르엘 등 대단지 입주장이 완충 역할을 했지만 이마저 줄어드는 분위기여서다. 올해 강남 3구에서 입주할 대단지는 래미안 트리니원, 디에이치 방배 등으로 손에 꼽힌다.
서울 임대차 시장 불안이 심해지는 가운데 경기 분당 등 1기 신도시 재건축이 본격화되면 수도권 전체로 전세난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토부가 공공주택 착공 물량을 6만가구 이상으로 확대하며 공급 속도전에 나섰지만, 재건축에 따른 대규모 이주 수요를 감당할 전월세 물량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분당이다. 국토부와 성남시는 이주단지 확보 방안을 두고 수년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주 지연→주택 공급 차질→전월세 시장 불안'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이주 수요가 집중되면 시기를 조절하는 방식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공급 부족 해소가 더 급해 그마저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관리처분인가 이후 이주·멸실이 집중되는 지역일수록 임대차 불안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반포주공 3주구처럼 이주 수요가 집중될 때 이주 시기를 1년 안에서 조절하는 방식 등이 있었지만, 서울은 지금 공급이 우선이어서 조절을 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손동우 기자 / 박재영 기자 / 홍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