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다스가 북촌·서촌 공략한 이유
“MZ세대 러너들의 ‘놀이 문화’ 주목”
핵심 입지에 매장을 내는 ‘점’ 보다
동선을 따라가는 ‘선’ 전략이 더 중요
상권 키워드는 페스티벌·웰니스·자연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가 서울 북촌과 서촌에 잇달아 매장을 내면서 부동산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강남역과 명동 같은 이른바 ‘메가 상권’에 집중하던 글로벌 브랜드의 출점 전략이 최근 들어 MZ세대의 놀이문화와 소비 동선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다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예전처럼 핵심 상권 한복판에 점(點)으로 꽂는 방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움직임”이라며 “러너들의 이동 경로와 체류 방식까지 고려한 새로운 리테일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1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아디다스코리아는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서촌에 팝업 스토어를 열고 운영 중이다. 2024년 8월 문을 연 ‘북촌 헤리티지 스토어’에 이은 두 번째 거점이다. 북촌 매장이 정식 매장이라면, 서촌 매장은 아디다스가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러닝 특화 매장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출점을 이례적인 행보로 본다. 통상 글로벌 브랜드들은 명동, 강남역, 홍대, 성수, 한남, 도산공원 등 대형 상권을 중심으로 순차적인 출점 전략을 짠다. 한 권역에 먼저 들어간 뒤 다음 단계 상권으로 확장하는 식이다. 그런데 아디다스는 북촌에 매장을 냈고,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인접한 서촌에 추가 거점을 냈다.
이런 변화의 배경으로는 러닝 트렌드가 꼽힌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러닝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놀이문화이자 네트워킹 문화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젊은층이 골프와 테니스에 몰렸다면,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러닝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남신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리테일 임차자문팀 이사는 “MZ세대에게 러닝은 단순히 뛰는 행위가 아니라 크루들이 모여 달리면서 네트워킹도 하고, 사진도 찍고, 끝나고 맥주도 마시는 놀이문화에 가깝다”며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들이 어디를 뛰고 어디서 머무는지를 보는 게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
과거에는 특정 지역의 핵심 입지에 매장을 내는 ‘점’의 전략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이동 경로와 체류 동선을 따라가는 ‘선’의 전략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종로 일대에서는 경복궁을 끼고 북촌과 서촌을 잇는 러닝 코스가 젊은 러너들 사이에서 하나의 놀이처럼 소비되고 있다. 위치정보시스템(GPS) 으로 지도 위에 강아지 모양을 그리는 이른바 ‘댕댕런’이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아디다스의 북촌·서촌 거점이 이런 러너들의 동선 위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디다스 매장이 강아지 모양 코스의 얼굴이나 엉덩이쯤에 자리 잡고 있다.
남 이사는 “‘댕댕런 상권’을 정조준한 출점은 아니다”라면서도 “
러너들이 모이는 상징적 지역성과 놀이문화를 오프라인 전략에 접목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북촌과 서촌의 의미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북촌 출점은 러닝보다는 상권 자체의 부상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읽은 결과에 더 가깝다고 본다. 북촌은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빠르게 돌아오고, 경복궁과 한옥마을, 인근 호텔 수요가 맞물리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곳이다. 과거 삼청동으로 불리던 상권의 무게중심이 조금씩 이동하면서 ‘북촌’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소비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흐름을 감지한 아디다스가 비교적 발 빠르게 북촌에 먼저 깃발을 꽂았고, 이후 서촌에서는 러닝 특화형 매장으로 다른 실험에 나섰다는 것이다.
남 이사는 “브랜드들이 상권의 메인 입지에는 플래그십을 두고, 그 외 지역에서는 트렌드와 맞물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식으로 전략을 세분화하고 있다”며 “아디다스 서촌점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장기 팝업이라는 형식 역시 요즘 오프라인 전략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전에는 브랜드가 한 번 매장을 열면 5년 안팎의 정식 임대를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브랜드들이 초기 리스크를 줄이고 시장 반응을 테스트하기 위해 장기 팝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남 이사는 “
요즘 오프라인 매장은 재미·놀이를 추구하는 ‘페스티벌’ 개념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장기 팝업은 이런 트렌드에 맞춰 훨씬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포맷”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아디다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러닝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성수동 서울숲 일대나 광화문, 한강 변 등 러너들이 자주 찾는 지역을 중심으로 스포츠 브랜드와 편집숍, 카페, 웰니스 콘텐츠가 결합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뉴발란스, 무신사 등도 러닝 관련 오프라인 거점이나 콘텐츠 확대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히 운동화와 의류를 파는 수준을 넘어, 러닝 전후의 체류와 경험을 묶어내는 방향으로 리테일이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웰니스(Wellness)도 주목해야 할 트렌드다. 종로 D타워 1층 스타벅스 자리에 들어선 올리브영의 ‘올리브 베러’는 건강기능식품과 웰니스 기능을 강화한 공간으로 광화문 일대 유동 인구를 끌어들이고 있다. 서울시와 일부 자치구가 샤워와 짐 보관 기능 등을 갖춘 ‘러닝 스테이션’을 확충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리테일이 단순 판매 공간을 넘어 특정 라이프스타일과 커뮤니티를 담는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를 새로운 상권의 탄생으로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러닝은 강한 트렌드지만 변동성도 큰 문화이기 때문이다. 남 이사는 “이 트렌드만 믿고 상권 투자에 나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기존 상권의 저력이 있으면서
자연과 스토리텔링 요소를 함께 갖춘 곳은 당분간 브랜드들의 실험 무대가 될 전망이다. 남 이사는 “북촌·서촌처럼 자연을 끼고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지역은 돈과 트래픽이 몰리는 거점으로서의 저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