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재경부, 공공계약 지침 협의
건설현장 원자재 수급 불균형 대응
건설사들 공공공사 “불가항력 반영” 민원
민간공사도 표준계약서 기반 조정 시사
현저히 부당한 특약은 조정 여지
국토교통부가 재경부와 협의를 거쳐 건설공사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공공공사비 조정 및 공기 연장 지침을 마련한다. 미국 이란 전쟁이 장기화할 시 원가비 부담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가 직접 공공계약의 유연한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8일 정부에 따르면 국토부는 국가계약법을 총괄하는 재경부에 공공공사의 공사비 조정 방안에 대한 업무 협조 요청을 마친 상태다. 재경부가 과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처럼 원자재 수급 불균형에 따른 공사 기간과 계약 금액 조정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리면 국토부도 이를 토대로 건설 현장에 지침을 하달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재경부에서 공공 부문에 대한 답을 주면 이를 바탕으로 지침을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민간 공사의 경우 표준도급계약서에 따라 원자재 가격 폭등 시 계약 금액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적용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공공공사는 국가계약법 및 관련 계약 예규의 적용을 받는 반면 민간공사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표준도급계약서를 기반으로 한다. 규율하는 법령은 다르지만 공사 기간 조정이나 금액 변경 등 주요 내용은 유사하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건설사들은 최근 공공공사를 중심으로 원자재값 폭등에 따른 공기 연장과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민원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민간 계약은 사적 계약의 영역이라 시공사들이 정부에 직접적인 요구를 하기에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정부가 발주처인 공공 부문에서는 명확한 유권해석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공사에서 쟁점이 되는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대해서도 정부는 건산법상 ‘부당 특약’ 규정을 들어 조정 여지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건산법 제22조 5항은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계약을 무효로 규정하고 있는데, 물가 상승분을 일체 반영하지 않는 특약이 이에 해당할 경우 효력을 부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 계약은 사인 간의 계약이다 보니 계약마다 조건과 상황이 달라 일괄적으로 우선순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개별 사업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현저히 부당한 경우에 한해 조정 여지가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는 건설업계에서 회자되는 과거 대법원 판례의 논거와도 궤를 같이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부산의 한 교회가 시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액 불가 특약이 건산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을 2024년 최종 확정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도급사 귀책으로 착공이 8개월 지연된 상태에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점을 들어 해당 특약이 수급인에게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민간 재건축·재개발 등 사업은 개별 사업장마다 개별성을 감안해야 한다. 엄정숙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계약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기에 해당 판결은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로 봐야 한다”며 “중동 사태가 촉발한 원자재 급등이 계약을 무효화할 정도의 수준인지 법리적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바라봤다.
건설업계에서는 민간 공사 계약 시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2020년 코로나19 이전까지는 건설 물가가 급격히 변동하는 사례가 드물어 수주 경쟁 시 도급사가 제시한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수용하는 것이 통상적인 계약 형태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쌍용건설과 KT 간의 판교 신사옥 공사비 분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쌍용건설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늘어난 공사비 171억원의 증액을 요구 중이나 KT는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하며 맞서고 있다.
최근 공시된 다른 대형 건설사들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도 대형 발주처 사업장에서 공사비 조정 문제로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대 공사 손실이 장부상 드러나기도 했다. 다만 이들 시공사는 주요 발주처와의 향후 관계를 고려해 소송 제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번 사건의 결과에 촉각을 돋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