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다주택 압박 50여일만에 … 대출연장 차단 초강수
다주택자 퇴로 열어준 정부
무주택자가 '세 낀 집' 사면
토허제 따른 실거주의무 유예
세입자 임대차갱신 시점 따라
만기 연장해주는 예외규정도정부가 다주택자 대출 연장 불허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부동산 시장에 수도권·규제 지역 아파트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상환 압박을 받은 다주택자가 내놓은 매물이 시장에서 원활하게 팔리도록 퇴로도 곳곳에 열어뒀다.
무주택자가 올해 안에 세입자가 있는 다주택자 매물을 사면 실거주 의무를 미뤄주는 게 대표적이다.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5월 9일)를 앞두고 매물을 끌어내기 위해 썼던 조치와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또 투기적 1주택자 등에까지 대출 규제가 갈수록 강해질 것이라는 엄포도 놨다.
1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다주택자가 소유한 수도권·규제 지역 아파트 주택담보대출의 만기 연장을 원칙적으로 불허한다"고 밝혔다. 만기 때 빚을 한꺼번에 갚는 '만기일시상환' 방식으로 대출받은 다주택자가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다주택자 만기일시상환 대출 규모가 2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해당 대출에 얽혀 있는 수도권·규제 지역 아파트 1만2000가구를 잠재적 매물로 본다.
다만 세입자 보호 측면에서 예외 사유를 뒀다. 임대차계약 종료일까지는 만기 연장을 허용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4월 1일까지 유효하게 체결된 신규 임대차계약의 종료일까지 만기를 연장한다. 만약 다주택자가 이날 세입자와 전세계약(2년 기본)을 새로 맺었으면, 2028년 4월 1일까지 해당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이 회수되지 않는다.
갱신계약도 고려했다. 대책 시행 하루 전날인 4월 16일까지 이뤄지는 묵시적 갱신(자동 연장)에 대해선 갱신계약 종료일까지 만기를 연장해준다. 묵시적 갱신은 전월세계약 만료 두 달 전까지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별다른 말을 안 하면 기존 계약이 자동 연장된 것으로 보는 제도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2+2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오는 7월 31일까지 종료되는 임대차계약에서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쓰면 대출 만기도 그에 맞춰 미뤄주기로 했다. 임차기간이 2028년 7월 31일까지로 늘어나는 만큼 대출도 이때까진 회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8월 1일 종료되는 임대차계약에서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쓰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입자 임차기간은 2년 늘어나지만, 기존 대출 만기는 연장되지 않는다. 자금 여력이 없는 다주택자는 빚을 갚기 위해 집을 내놔야 하는 셈이다.
상환 부담이 큰 다주택자가 집을 파는 경우를 고려해 퇴로를 열어주기도 했다. 무주택자가 다주택자가 소유한 세입자 있는 주택을 사면 토지거래허가제도에 있는 실거주 의무를 유예해 주기로 한 것이다.
단 무주택자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지방자치단체에 토지거래허가신청 접수를 하고 허가일로부터 4개월 내 주택을 취득해야 한다. 이 경우엔 세입자 임대차계약 종료일까지 실거주 의무가 밀린다. 주담대 약정상 전입신고 의무도 마찬가지로 유예한다. 무주택자가 세를 낀 다주택 매물을 사면 최장 2028년 7월 31일까지 실거주 의무가 밀리는 셈이다.
전문가들도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노림수가 통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이번 조치는 지난해 수도권과 규제 지역의 다주택자 신규 대출 금지에 이어 이미 대출을 받아 버티던 다주택 차주의 레버리지 유지 자체를 어렵게 하는 압박책"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금보다 집값이 크게 낮았던 시기에 적은 대출로 주택을 사들인 다주택자들은 상대적으로 대출 상환 부담이 낮아 전세 보증금을 올리는 등 방법으로 버틸 가능성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제도권 대출이 연장되지 않더라도 전세 보증금을 올려 임차인으로부터 사실상 대출금을 내는 방법도 있어 어떤 다주택자들에게는 대출 제한이 큰 압박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대책이 매매 시장에서는 안정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다주택자들이 공급해온 전세 매물이 줄어 월세화를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앞으로 대출 규제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금융당국은 이날 투기적 1주택자를 겨냥한 규제를 추후 발표한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비거주 1주택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지목한 부동산 투기 주체의 한 축이다. 시장에선 향후 나올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시장에 미칠 파장이 훨씬 클 것으로 본다. 당국은 투기성을 가려낼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금융위 측은 "고민 중이고 최대한 합리적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정책대출도 마찬가지다. 청년과 취약계층에 대한 자금 공급은 지속하되, 그 외 대상에 대해선 전세보증비율 축소 등 관리를 강화하는 기조다.
[이희수 기자 / 손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