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자금 2.7조 서울 아파트로
대출 막히자 주식·채권 총동원
강남3구·마용성에 1.6조 쏠려
평형 클수록 주식자금 비중↑
강남 135㎡초과 아파트 12.5%
노원구 소형 평형은 1.5% 그쳐주식과 채권 매각대금이 서울 아파트 시장의 새로운 '돈줄'로 부상했다. 강력한 가계부채 관리 대책으로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도 서울 상급지 실거래 가격이 견조하게 유지되는 배경에는 증시에서 차익을 실현해 실물자산으로 옮겨온 자산가들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7일 매일경제가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최근 9개월 치 서울 주택 구입 자금조달계획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자금을 많이 투입해야 하는 상급지일수록, 그리고 매수하는 주택의 평형이 커질수록 주식 자산을 동원하는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서울 전역에서 발생한 주식·채권 매각대금 2조7276억원은 소위 '급지'가 높은 특정 지역으로 쏠렸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6개 구에서 신고된 주식 매각대금은 총 1조6144억원에 달했다. 이는 서울 전체 주식·채권 매각대금의 59.2%에 해당한다. 주식을 팔아 서울에 집을 산 자금의 약 60%가 이들 6개 구로 집중된 셈이다.
고가 주택이 밀집한 지역일수록 대출이 안 나오기 때문에 부족한 자금을 주식·채권 매각대금으로 충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정부는 10·15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40%로 축소하고, 집값에 따라 주담대 한도를 차등화했다. 15억원 이하 주택은 6억원, 15억원 초과 25억원 이하 주택은 4억원,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도록 묶었다. 여기에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은 경우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을 금지하고 수도권 주담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가산금리도 3%로 일괄 상향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상급지 갈아타기를 하려면 기존 집값 외에 추가 자금이 필요한데, 한강변 등에 거주하는 고소득 맞벌이 부부들이 보유한 채권이나 해외 주식 등이 강남 3구로 옮겨가기 위한 주된 보충 재원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최근 자금조달계획서 항목이 세분화되고 증빙이 까다로워지면서 예전에는 예금 등으로 뭉뚱그려졌던 주식·채권 매각대금이 명확하게 수치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과거에는 자금 출처를 모호하게 신고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증권거래내역서와 입출금 잔액을 정밀하게 증빙해야 하는 만큼 숨겨져 있던 주식·채권 매각대금의 실체가 수면으로 올라온 셈이다.
자치구별로 살펴보면 주식 처분 자금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강남구였다. 강남구에서만 4682억원의 주식·채권 매각대금이 아파트 매입에 쓰였는데, 이는 전체 조달 신고액 6조3968억원의 7.3%에 달한다. 서초구는 주식·채권 매각대금 비중이 7.5%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았고, 용산구 역시 1313억원이 유입되며 6.8%의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양지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수석은 "상급지로 이동하려는 수요자들이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면서 부족한 자금을 주식 수익으로 보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형별로 보면 집이 커지고 비싸질수록 주식 처분 자금 동원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강남구의 경우 전용 135㎡ 초과 대형 평형 매수자들의 주식·채권 매각대금 비중은 12.5%로, 전 평형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강남구 135㎡ 초과 평형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금액 총액의 54%가 주식·채권 매각대금일 정도로 비중이 치솟기도 했다.
정보현 NH투자증권 부동산 수석연구원은 "대출을 동반한 목돈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변동성은 크지만 최근 분위기가 좋았던 주식 시장을 통해 자금을 준비하는 과도기적 현상이 체감된다"고 말했다.
반면 소형 평형이나 서울 외곽 지역은 주식 자본의 영향력이 미미했다. 노원구 소형 평형 매수자들의 주식·채권 매각대금 비중은 1.5% 수준에 머물렀으며, 중랑구와 강북구 등도 주식 처분 자금 유입이 적었다.
대출 규제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중단, 보유세 강화 예고가 고차방정식처럼 맞물리며 현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100인 100색'이다. 주식 처분 자금을 총동원해 똘똘한 한 채를 마련하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세금 중과를 피하기 위해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처분 자금을 증시로 옮기는 다주택자도 있다.
[홍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