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發 하락세 확산 … 4가지 부동산시장 변화
① 고가 1주택자의 보유세 걱정
② 많이 오른 강남부터 매물로
③ 고령자들 현금마련 더 중시
④ 강남 경매 낙찰가율도 뚝뚝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거주하는 60대 김 모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최근 정부가 1주택자에게도 보유세 강화,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기 때문이다. 30년 전 사들인 아파트에 거주하는 그는 은퇴해 소득이 별로 없다. 김씨는 "집을 팔고 면적을 줄이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현금을 확보할지, 자녀에게 증여할지 고민이 많다"며 "세무사에게 상담이나 한번 받아 봐야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다주택자 압박으로 시작된 주택시장 관망세가 퍼지며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흘러내리고 있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는 3주 연속 떨어지며 낙폭이 커졌고, 강동구는 56주 만에 하락 전환했다. 강남 3구 아파트 가격이 3주 연속 밀린 것은 2024년 2월 첫째주 이후 약 2년1개월 만이다.
강남권 아파트 매물은 이달 들어 더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 집계를 보면 12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7만6638건으로 2주 전(7만1793건)보다 6.7% 늘어났다. 같은 기간 강남구(12.2%), 서초구(14.3%), 송파구(14.2%) 모두 매물이 늘어났고, 강동구(22.0%)는 가장 큰 매물 상승폭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집값 급등으로 양도차익이 커진 강남권 내 보유주택을 중과세 부활 전에 처분하려는 다주택자가 많아지면서 매물이 늘어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1주택 보유자들 사이에서도 주택을 매도하려는 움직임이 늘며 집값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령층 실수요자들이 집값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과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 부담 줄이기, 베이비붐 세대 은퇴에 따른 노후자금 마련 등 종합적인 이유로 주택 처분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2월 서울에서 20년 이상 주택을 보유했던 매도인 수는 1149명으로 집계됐다. 매년 2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다. 특히 재작년 380명, 작년 777명이었던 수치가 급격히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 서울에서 아파트 등 집합건물을 20년 넘게 장기 보유하던 사람이 주택을 판 건수가 1만건을 넘어서며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많았는데 올해 기록을 다시 깰 것이 확실하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과거에는 외곽이 먼저 하락하고 강남은 견고했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며 "고가 1주택자에 대한 세제 압박과 초고령사회 진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일부 고령층 집주인 사이에서는 증여 움직임도 활발하다.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 아파트 등 집합건물 증여 건수는 901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514건)보다 75.3% 증가한 수치다. 특히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강남 3구에서 증여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강남구(41건→87건), 서초구(32건→62건), 송파구(36건→56건) 등에서 모두 증여가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에 '증여성 저가 매도'가 가세하며 부동산 매매시장을 흔들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매매 신고가액이 최근 3개월 내 거래된 실거래가보다 '30% 낮은 금액'과 '3억원' 가운데 적은 금액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정상 거래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 점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같은 분위기 속에 경매나 보류지 판매 등 특수 매매시장도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모두 토지거래허가구역 제재를 받지 않아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가 가능해 주목받던 영역인데 시장의 전반적인 하락세를 이겨내지 못하는 양상이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강남구 아파트 경매 평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실제 낙찰가율)은 93.9%를 기록했다. 전달(108.7%) 대비 14.8%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지난 1월 120%까지 치솟았던 송파구 낙찰가율도 2월에는 104.2%로 내려왔다. 강남구 청담동의 대장주로 꼽히는 '청담르엘'에선 보류지 12가구가 시장에 나왔지만 겨우 2가구만 매각됐다.
[손동우 기자 / 홍혜진 기자 / 박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