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허제 실거주의무 유예 불구
2월 12일 이후 갱신일 시작 땐
정부 "규정 위반" 거래 불허
세입자와 조기 퇴거 합의해도
지자체서 퇴짜 놓는 사례 많아
"다주택 매각 유도 취지 퇴색"정부가 다주택자 매물을 유도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 규제를 완화했지만 정작 전세 계약 만기가 임박해 세입자가 갱신권을 행사한 주택들은 거래가 허가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정책 발표일인 2월 12일 당시 임대차 계약이 진행 중이더라도 만기 후 새로 시작될 갱신 계약이 발표일 이후라면 행정당국이 거래 불허 처분을 내리고 있어서다.
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소재 아파트를 소유한 다주택자 A씨는 최근 무주택 매수인과 구청에 토지거래허가를 신청했으나 최종 불허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당초 2024년 4월부터 2026년 4월까지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맺고 있었다. 임차인은 만기 3개월 전인 지난 1월 이미 갱신권 사용 의사를 밝혔고, 실거주 계획이 없던 A씨도 이를 받아들인 상태였다.
불허 배경은 다주택자 매물 유도를 위해 발표한 토지거래허가제 완화 기준일인 '2026년 2월 12일'이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주택이 정책 발표 당일인 2월 12일 기준으로 '임대차 계약이 시행 중'이어야 한다.
A씨는 2월 12일 당시 분명 임대차 중이었지만, 구청 해석은 달랐다. 임차인이 1월에 행사한 갱신권으로 인해 연장되는 계약의 효력 발생일이 '2026년 4월'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정부는 이를 2월 12일 당시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계약'으로 간주해 허가되는 최초 계약 범주에서 제외한 것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세입자는 보통 만기 4~5개월 전부터 갱신 여부를 확정 짓는다"며 "법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1월에 합의를 마친 집주인에게 과거에 맺은 전세 계약일에 따른 갱신 시작일이 늦다며 거래를 막는 것은 문구를 기계적으로 해석한 행정 편의주의 아니냐"고 말했다.
더욱이 이 사례에서 임차인이 매수인의 실입주를 돕기 위해 2028년 2월 이전에 아무런 조건 없이 조기 퇴거하겠다고 확약했음에도 행정기관은 불허 방침을 고수했다. 세입자가 일찍 나가겠다고 동의까지 했지만 '계약서상 재계약 시작일'이 정책 발표일 이후라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게 구청 반응이다.
한 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같은 사례가 빈발하면서 최근 다주택자 매물 중 토지거래허가 신청이 승인되는 것은 10건 중 1건꼴에 불과하다는 전언이다.
법조계에서는 행정당국의 이 같은 처분이 서류상 날짜에만 매몰된 기계적 행정이라는 분석이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는 "임대차 갱신은 임차인이 요구를 표시한 시점에 이미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형성권"이라며 "이미 1월에 갱신 합의가 성립됐다면, 실제 계약 시작일이 4월이라는 점은 이행 시기의 문제일 뿐 법률관계 자체는 정책 발표 전에 확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 같은 사례에 대해 "정책의 취지는 갭투자 양성화가 아니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라며 "세입자와의 개별적인 확약을 근거로 예외를 넓혀주면 너도나도 2028년 2월로 퇴거일을 맞춰 투자에 나설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 문구에만 얽매인 이런 행정이 정책 본연의 취지인 '다주택자 매물 유도'를 스스로 퇴색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미 갱신권을 수용한 집주인들은 법적 의무를 다하느라 발이 묶인 것인데 정책에 부응해 보유 주택을 매도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됐다"며 "임차 조기 종료 확인서 등을 통해 기한 내 실입주가 담보되는 경우에는 허용하는 방향으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