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로 위기 정비사업장 속출
85개 핵심공급 전략사업 조합장
서울시에 피해상황 담아 탄원서 제출
서울시 8.5만가구 조기 착공 등 지원
오세훈 “손에 잡히는 공급대책 추진”
“정부는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데, 정작 현장 주민들은 투기꾼 취급을 받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지금 재개발 현장은 퇴로가 막힌 전쟁터와 같습니다.”
서정숙 청량리8구역 재개발 조합장은 2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신속 착공 발표회’에서 서울시에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가 담긴 탄원서를 전달하며 이같이 말했다. 서 조합장은 이날 서울 내 정비사업 조합장을 대표해 현장의 절박한 사정을 토로했다.
가장 큰 걸림돌로 꽉 막혀버린 이주비 대출을 꼽았다. 서 조합장에 따르면 청량리8구역은 최근 이주를 시작했지만 전체 조합원 234명 중 27%에 달하는 63명이 대출을 받지 못했다. 부족한 금액만 현재 160억원이 넘는다. 시공사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보증 한도 때문에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서 조합장은 “세입자 전세금도 상환하지 못할 처지에 놓여 철거와 착공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며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사업지가 한둘이 아니다.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청량리8구역 지상 29층 711가구를 짓는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사업이 지지부진했다가 2018년 조합을 설립했다. 서울시 지원책에 힘입어 사업이 급물살을 타며 지난해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사업성 보정계수를 적용받아 가구 수가 기존 610가구에서 711가구로 101가구 늘고, 층수도 24층에서 29층으로 상향되며 전반적으로 사업성이 개선됐다. 하지만 6·27대책과 10·15대책 등 정부의 잇단 규제로 이주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 조합장은 “공사비는 치솟고 사업비 이자는 한없이 불어나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 몫이 된다”며 “주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대출 규제를 제발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조합원 지위 양도 규제로 인한 고충도 토로했다. 10·15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이 생겼다. 재건축은 조합 설립 이후부터, 재개발은 관리처분 인가부터 조합원 지위 양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 조합장은 “사업 기간이 10~20년씩 걸리는 재개발 특성상 실직, 은퇴, 질병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을 팔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담금이 불어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집을 팔려는 주민들도 있지만, 조합원 지위 양도가 막혀 아무도 집을 사려 하지 않는다”며 “투기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규제를 이전으로 되돌려 안정적인 정비사업 추진이 가능하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청량리8구역과 같은 위기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6·27, 10·15 대책으로 현재 서울 정비사업에서 1주택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70%에서 40%로 줄었고, 다주택자(1+1 분양 포함)는 대출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올해 이주를 앞둔 약 3만가구가 이주비 대출 규제로 사업 지연 등이 예상된다.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에 걸린 사업지는 42곳에서 159곳으로 급증했다. 신규로 구역지정된 곳까지 포함하면 앞으로 규제를 받는 사업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날 서울시는 3년 내(2026~2028년) 첫 삽을 뜰 수 있는 85개 구역(8만5000가구)을 ‘핵심공급 전략사업’으로 선정해 서울시의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또 전자총회 도입과 해체계획서 자문, 구조·굴토 통합심의 등 신속착공 6가지 지원계획 등을 통해 사업 속도를 최대한 높이기로 했다. 이주비에 대해서도 재원을 확보해 융자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장의 절박함과 고통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무겁게 느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실체가 불분명한 공급계획으로는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며 “서울시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공급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