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다 다급해진 강남권 다주택자
급매 올리며 “5월전까지 팔아달라”
매수우위 시장 전환은 더 지켜봐야
“다주택자 집주인이 급하다면서 1억원 싸게 초급매로 내놨는데 매수자들이 많이 붙었어요.”(강남구 압구정동 A공인중개업소)
이재명 대통령이 연이어 다주택자를 압박하고 부동산 투기 세력을 잡겠다고 나서면서 서울 강남권에서도 집이 급매로 나오는 사례가 하나둘 포착되고 있다. 서울 외곽지역 위주로 거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뛰어넘은 모습이다. 일부 단지는 한 달 사이 매물이 무려 60%까지 늘어난 곳도 있었다. 매물을 최대한 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거래 완료까지 최대 6개월의 여유를 주는 방안도 추진되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물론 일각에선 지난해 잇따른 규제로 매물이 계속 줄어들었던 만큼 최근 매물 증가 추세가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하기까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4일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에 아실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3차 아파트’의 매물은 52건으로 지난 1월 1일(33건)보다 57.5% 증가했다. 급매 물건도 등장하고 있다. 현대3차 전용 82㎡ 중층 물건은 호가를 1억원 내리며 55억원에 ‘최저가’로 나왔다. 같은 평형 1층 물건은 기존보다 1억원 낮춘 56억원에 호가가 정해졌다.
개포동에서는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전용84㎡를 41억원에 팔아 달라는 문자가 인근 부동산에 전달됐다. 지금까지 최저 호가가 42억원이었는데 이보다 1억원 싸게 매매해달라고 한 것이다.
송파구는 대단지를 중심으로 매물이 대폭 늘어났다. 같은 기간 잠실 엘스(61건→99건)와 잠실 리센츠(89건→143건)는 한 달 사이 매물이 60% 이상 증가했다. 가락동 헬리오시티도 매물이 468건에서 686건으로 늘어났다. 잠실 리센츠 전용 27㎡(중층)는 호가를 5000만원 내린 17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왔고, 헬리오시티 전용 59㎡도 기존보다 2000만원 인하한 27억8000만원 주택이 등장했다.
다른 강남권 아파트 매물도 증가세다. 서초구는 잠원동(29.5%), 반포동(9%), 서초동(8.3%) 순으로 매물이 늘었다. 7호선 반포역 역세권인 잠원동아 매물은 지난달 1일 81건에서 2월 3일 148건으로 무려 82.7% 증가했다. 재건축 아파트인 ‘반포미도2차’ 역시 25건에서 41건으로 64% 늘어났다.
일대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급매물 중 상당수는 다주택자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만호 압구정 중앙리얼티 대표는 “다주택자들이 정해진 기한 안에 매물을 팔아야 하니 급매로 내놓고 있다”며 “대부분 노년층이 보유한 주택인데, 그동안 집값이 많이 오르기도 했고 향후에 보유세 등이 상승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지금 버티는 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남권에서 급매 물건이 하나둘 등장하자 매수 대기자들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개포동의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미 여러 주택을 정리해 자금 여력이 있는 고객들에게 급매물이 있는지 문의가 꽤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급매 물량에도 불구하고 당장 서울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든다거나 매수자 우위로 바뀔 가능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6·27 대출 규제와 10·15 부동산 대책 등을 통해 매물 수가 급감해 지금 물량이 절대적으로 많다고 보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 건수는 지난해 1월 1일 기준 8만8752건이었다가 연말에는 5만7612건까지 확 줄었다. 이 대통령의 ‘강공 발언’이 연이어 쏟아지며 매물이 5만9021건까지 올라왔지만 전년 동기(8만2685건)와 비교하면 28.6%가량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한강벨트 핵심 입지인 마포구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인근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올해 1월보다 매물이 늘어난 건 맞지만 이전에 물량이 너무 적었다”며 “다주택자들이 당장 매물을 쏟아내기보다는 관망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보완 방안을 밝히긴 했지만 세입자가 있는 경우에 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매수자에겐 실거주 의무가 있다. 매수를 희망하는 사람은 기존 세입자가 집을 비워줄 것이라는 임대차 계약 종료 확인서를 내야 집을 살 수 있다. 기존 집주인이 웃돈을 주며 세입자를 내보내는 방안이 있지만 이마저도 거절하면 매물이 시장에 나올 수 없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다주택자 매물들이 중첩된 규제 속에서 시장에 원활히 나오도록 구조를 잘 짜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며 “이 방안의 완성도에 따라 정책 효과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