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패러다임 새로 쓴 도시들
자율적으로 용도 바꿀 수 있어
초고밀 복합개발 얼마든 가능
마리나 원·허드슨야드 대표적
세계적으로 건물 용도를 전환하는 수준을 넘어 도시계획 단계부터 용도지역을 과감하게 깨는 시도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도심에서 주택 등을 개발할 용지가 고갈되고 땅값·집값이 치솟자 뉴욕, 싱가포르, 도쿄 등 여러 도시에서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탈용도지역)을 적극 활용 중이다.
전통적으로 국내외 도시계획의 기본 개념은 용도지역제다. 상업·주거·여가 등 기능에 따라 공간을 구분하고 기업은 업무구역(산업·공업단지)에 집중 배치하는 형태다. 서구에서 산업화가 시작된 1800년대 말에 도입돼 지금까지도 주요 도시계획 체계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용도지역제가 융복합·디지털 전환을 맞는 도시 모습과 변화상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업무구역과 주거·여가 공간을 모아 소규모 클러스터를 하나의 도시 안에 여러 곳 조성하는 ‘직주락(職住樂)’ 클러스터가 도시 개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등장한 개념이 바로 비욘드 조닝이다. 용도지역의 큰 체계는 유지하되, 특정 지역에 용도적으로 자율성을 부여하고 복합적인 기능 배치를 가능하도록 유도하자는 개념이다.
대표적인 비욘드 조닝 사례가 싱가포르의 관광 명소 ‘마리나 원’에 적용된 ‘화이트 사이트’다. 마리나 원은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마리나베이’에 위치한 주거·관광·국제업무 복합개발단지다. 싱가포르는 이 지역만큼은 토지 이용 규제를 두지 않고 용적률 1300%(지하 4층~지상 34층)의 초고밀 복합개발을 유도했다.
미국 뉴욕은 허드슨야드 같은 대형 개발 사업지는 물론 일반 주거지역에도 ‘혼합용도 개발체제’를 적용하고 있다. 주택과 소규모 업무·상업시설을 다양하게 섞어 개발하는 방식이다.
샌프란시스코 역시 비욘드 조닝과 유사한 도시계획 체계를 쓰고 있다.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대중교통 및 상업지구를 따라 주거 밀도를 높이고 예전에 단독주택만 허용되던 지역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주택 건설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국가전략특구도 유명한 사례 중 하나다. 2014년 아베 신조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비즈니스하기 쉬운 환경을 마련하겠다’며 도입한 탈규제 지역이다. 도쿄역 야에스지구, 아카사카 프로젝트, 시나가와 프로젝트 등 대지 3만㎡ 이상(트로피에셋)의 굵직한 개발이 모두 이 제도를 활용해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도 2023년 비욘드 조닝을 도시계획 개념에 본격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비욘드 조닝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진행했다. 국토부도 비슷한 목적으로 ‘공간혁신구역’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계획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공간혁신구역은 도시혁신구역, 복합용도구역, 도시계획시설입체복합구역 3가지로 구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장에 이 개념이 제대로 도입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건설업황 악화로 민간 건설사들의 참여가 적극적일지 예상되지 않는 데다 인근 주민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인프라스트럭처 문제 등 사안별로 민감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 예상보다 많다는 게 관계자들 의견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비욘드 조닝의 핵심은 사업자가 별도 심의 없이 허용된 용적률 안에서 토지 용도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한 인센티브나 개발이익 공유 등 문제가 아직 정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