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후반 사업시행·관리처분 등
부서이견 발생시 시가 직접 조율하고
자치구 권한 확대해 약 1년 추가 단축
2031년까지 최대 39만 가구 공급
한강벨트 지역서 19만8천가구 착공
서울시가 서울 주택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민간 재건축·재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 6년 5개월 앞당겨 착공 기준으로 2031년까지 31만 가구를 공급한다. 사업시행·관리처분계획·이주 등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후반부 절차를 일부 생략하고 부서간 이견을 시가 직접 조율하는 창구를 마련한다. 자치구의 인허가 권한도 대폭 확대한다.
앞서 서울시는 통합계획·심의 등을 통해 민간 재건축·재개발 사업 기간을 평균 18년 5개월에서 13년으로 5년 5개월 단축했는데, 이번 규제 혁신으로 1년을 추가로 앞당긴다. 민간의 역할을 강화해 집값 상승의 진원지인 한강벨트 지역 위주로 주택 물량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시는 29일 민간 재건축·재개발 속도를 끌어올리는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2.0을 본격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신통기획은 민간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공공지원을 말한다. 지난 2021년 시작한 신통기획 1.0은 정비사업 전반부인 정비구역 지정과 추진위·조합설립에 걸리는 기간을 평균 5년에서 2년으로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시는 신통기획 1.0과 함께 정비지수제 폐지, 사업성 보정계수 적용, 용적률 특례 등을 통해 평균 18년 5개월 걸리던 사업 기간을 13년으로 줄였다.
신통기획 2.0은 정비사업 후반부인 사업시행계획·관리처분계획·이주·준공에 이르는 과정 중에서 인허가 절차를 생략하고 행정 지원을 더 강화해 1년을 추가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시는 통합심의 전 진행하는 환경영향평가 초안검토 회의를 생략하기로 했다. 2개월 이상 걸리는 심의 기간이 줄게 된다.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 단계에서 중복해서 확인하는 재개발 임대주택 세입자 자격조회도 관리처분에서 1회만 진행한다.
조합원 분양 공고 전에 시행하는 추정 분담금 검증 절차도 4회에서 3회로 줄이기로 했다. 추정 분담금 검증은 다른 지역들은 3회 진행하는데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추정분담금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4회를 유지해왔다.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뒤 작성하는 건물 해체종합계획서도 실제 철거가 필요한 구역에 대해서만 작성하기로 개선한다. 그동안 정비구역 내 전체 건축물에 대해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조합은 서류 준비에 낭비하던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서울시 또는 구청도 심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사업시행인가 과정에서 부서들간 협의와 검증의 속도도 빨라진다. 서울시가 ‘협의 의견 조정 창구’를 마련해 부서간 이견 발생할 경우 직접 조율에 나선다. 조합이나 설계사들이 일일이 각 부서를 돌며 의견을 조율하지 않고 원스톱 처리가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또 관리처분 계획 타당성 검증을 내년 상반기부터 한국부동산원뿐 아니라 SH공사에서도 처리해 정비물량 급증으로 인한 행정지연을 방지하기로 했다.
이주 속도도 높인다. 시는 재개발 단지의 조합이 세입자에게 이사비 등을 챙겨주면 이에 대한 보상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그동안 재개발 사업에선 특정 시점에 거주하는 세입자에게만 조합이 법적으로 손실보상(이주비 등)을 하도록 돼 있다. 그 이후 들어온 세입자는 보상 없이 쫓겨나야하는 상황에 놓인 탓에 종종 이주를 거부하고, 이는 사업 지연과 추가 비용 발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세입자 손실보상 기준을 충족하면 용적률을 최대 1.25배까지 더 받을 수 있도록 지자체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에 시는 조만간 조례를 개정할 예정이다. 조합은 세입자와의 갈등을 해결해 빠르게 이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용적률 증가로 분양 수익이 늘어난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자주 발생하는 정비구역 면적과 정비기반시설 규모 등 경미한 변경 사항은 구청장이 직접 인가할 수 있도록 자치구의 권한을 서울시장 수준로 확대한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공원·놀이터 위치를 미세하게 바꾸는 등 중간에 사소한 변경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기존에는 이런 경미한 변경도 서울시의 심의를 다시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 지연과 금융 비용 증가는 조합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이에 시는 연내 조례 개정을 통해 경미한 변경에 대한 인가 권한을 구청장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서울시 “2035년까지 37만7000가구 준공”··· 한강벨트에 향후 6년간 19만8000가구 공급
서울시는 신통기획 시즌 2를 가동해 2031년까지 총 31만 가구를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정비구역 지정을 앞둔 사업장과 모아주택 등 소규모 정비사업, 리모델링 물량까지 합치면 2031년까지 최대 39만 가구 이상 공급이 가능하다고 추정했다. 준공 기준으로 2035년까지 37만7000가구가 공급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정부의 잇단 대책에도 ‘불장’ 우려가 커지고 있는 한강벨트에서 향후 6년간 19만8000가구가 공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전체 착공물량의 63.8%에 해당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의 주택공급 문제 해결의 핵심은 민간 중심의 정비사업, 특히 강남3구를 비롯한 주요 지역에 충분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통기획 시즌 2를 가동해 공급 속도를 획기적으로 앞당겨 서울 전역에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충분한 주택을 공급하고 부동산 시장 안정 효과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조합·정비업계 “엔진 속도는 올리지 못하지만 윤활유 역할”
조합 등 정비업계는 신통기획 시즌2에 대해 일단 환영 분위기다. “사업엔 별로 도움이 안 되면서 성가신 것들을 없애준 것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통기획 시즌2가 주민들이 체감할 만큼 사업 기간을 줄여주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반응이 적지 않다. 몇몇 행정 절차 간소화로 서류 준비와 심의 대기 등 몇 주 또는 몇 개월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사업 전체 기간을 크게 앞당길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엔진 속도를 올리지는 못하지만 연결고리에 기름칠해주는 수준의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백준 J&K 도시정비 대표는 “서울시가 법적 테두리에서 가능한 방안을 최대한 검토한 흔적이 엿보인다”며 “여러 세부 대책들을 끌어모아 전체적인 사업 효율을 높이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백 대표는 “9·7대책에 언급된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을 병행하면 사업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재건축의 경우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다. 정비업계에선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을 합치면 이 단계에서 걸리는 기간이 절반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강변 대표 단지인 아크로리버파크와 래미안 원베일리 재건축을 이끈 한형기 미래주택연구원 대표는 “사업시행인가 과정에서 조합이 여러 부서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며 “서울시의 협의 이견 조정 창구는 사업 효율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구청장의 인허가권을 확대한 것도 의미가 있는 진전”이라면서도 “사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려면 더 많은 행정 절차의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합이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자료의 완성도를 높이지 않을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자칫 보완 자료 제출, 심의 재상정, 총회 재개최 등으로 이어져 행정절차 축소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
이주 촉진 방안에 대해서도 세입자 보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을 경우 손실 보상을 둘러싸고 조합과 세입자간 갈등이 더 커져 사업이 오히려 지연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