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전부터 세무법인 상담 폭주
집값 급등·보유세 불안감에
“지금 물려줘야 세금 덜 낸다”
토허제에 대출규제까지 겹쳐
매매 막힌 규제 환경도 영향
증여가 사실상 유일한 ‘이동 수단’
정부는 편법증여 조사 강화
서울 서초구의 A세무법인은 최근 증여세 관련 문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대부분 보유 중이던 아파트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과 관련된 상담들이다. 이 법인을 운영하는 황 모 세무사는 “올 3월부터 증여 관련 상담이 늘어나더니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증여 관련 문의가 워낙 많아 양도소득세 관련 상담을 할 시간이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집값 급등기를 겪으며 증여를 서둘러 세금을 아끼려는 움직임에 정부 규제로 매매 거래가 쉽지 않은 환경, 새 정부 출범 이후 보유세 급등 위험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로 보인다.
최근 2~3년간 아파트 증여 움직임은 잠잠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종합부동산세 등 부담 때문에 2만2772건까지 치솟았던 서울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 등) 증여는 2023년에는 6011건까지 줄어들었다. 집값이 안정세를 보인 데다 정부 정책도 큰 변화가 없어 자산가들 입장에서는 증여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25년부터 증여세 과세 방식을 개편하는 것을 앞두고 수요자들이 작년 말 증여를 마무리해 추가적인 움직임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국세청은 작년 말 시세를 알기 어려운 꼬마빌딩에 한해 실시하던 감정평가 대상에 시장 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신고된 고가 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을 올해부터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3월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일부 인기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실거래가가 올라가면 증여가액까지 함께 올라간다”며 “세금 부담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증여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 1월만 해도 81건이었던 강남3구 증여는 3월 156건까지 올라간 후 계속 올라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증여를 선호하는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전세 관련 대출 규제 등 정부 압박이 심해지면서 매매 거래가 쉽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이 장기적으로 올라간다고 예측해도 매매가 어려운 만큼 차선책으로 증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의 투기 수요 차단 정책으로 세금 완화 기대감까지 옅어졌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상속·취득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10억원 초과)로 낮추고, 세율이 가장 낮은 과표구간도 1억원 이상 10%에서 2억원 이상 10%로 완화하는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반대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조만간 발표될 새 정부의 첫 번째 세법 개정안에도 부동산 관련 세금은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번 세법 개정안에 상속·증여세 개편안이 담길지, 담기더라도 어떤 내용이 포함될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세무 업계 관계자는 “2020년부터 2021년에는 자산가들 사이에서 보유세나 증여세 등을 아끼기 위해 사전증여를 하는 것이 화두였다”며 “그 이후에는 세금이 완화된다는 기대감에 관망세가 있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책 기조가 바뀌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시장에서 증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도 편법 증여 가능성까지 올라간다고 판단하고 압박을 강화하는 추세다. 국세청은 집값이 과열된 수도권을 중심으로 탈세 정보를 수집하고 부동산 실거래 자료, 소득·재산 자료 등을 활용해 편법 증여를 조사한다. 국토부는 자금 출처 의심 사례, 허위 계약 신고 등 점검을 강화한다.
실제로 작년까지 부동산 관련 불법 증여를 이유로 조사하는 강남권 고가 아파트는 10억원 이상, 부모와 자식 간 거래에선 시가와의 거래금액 차이가 3억원 이상인 경우가 ‘보이지 않는 선’이었다. 이 금액 이상만 조사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런 선 아래에서도 세무조사 통보를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세무 업계에서는 증여세 등에 대한 정부 압박이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자산가들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암묵적으로 통용됐던 증여 관련 면세 기준을 3억원 이상이 아니라 2억1700만원으로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 금액 이하로는 부모가 자식에게 무이자로 빌려줘도 되지만, 그 이상의 금액이라면 연 4.6% 이자율을 적용해 소득세를 내게 세무당국이 유도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돈이 오간다면 차용증을 무조건 쓰라는 조언도 많았다. 박민수 더스마트컴퍼니 대표는 “증여와 관련해 수혜자로 지목받는 자식들은 자신의 5년간 소득과 부동산 관련 자산의 금액 차이를 차용증으로 설명해놓아야 향후 세무조사가 있을 경우 대비할 수 있다”며 “빌리는 금액과 상환일, 상환 방법까지 자세하게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