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사 14곳 상반기 실적
영업손실 2526억원 달해
수익형 부동산 극한 한파
기한 내 공사 못 끝내 타격
물류센터와 지식산업센터 같은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서 한파가 계속되며 국내 부동산 신탁사들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 대거 늘린 '책임준공형 관리형(책준형) 토지신탁' 사업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1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부동산 신탁사 14곳의 올해 상반기(1~6월) 영업손실은 총 2526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에 영업이익 3326억원을 낸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실적이다. 신탁사 14곳은 작년 상반기에 당기순이익 2574억원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2472억원 당기순손실을 내기도 했다.
특히 금융 계열 신탁사들의 실적이 저조하다. 올해 상반기 실적이 가장 좋지 않은 곳은 신한자산신탁이다. 올해 상반기 당기순손실이 1751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KB부동산신탁도 1058억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KB부동산신탁의 작년 한 해 당기순손실 841억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KB금융지주는 이에 유상증자를 통해 KB부동산신탁에 거듭 자본을 수혈해주는 상황이다.
교보자산신탁(-727억원)과 무궁화신탁(-57억원)도 손실을 면치 못했다. 우리자산신탁은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 90억원을 기록했지만 이는 전년 동기(384억원) 대비 대폭 줄어든 수치다. 하나자산신탁 당기순이익도 작년 상반기 471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364억원으로 감소했다.
비금융 계열 신탁사들의 실적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한국토지신탁은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165억원)보다 늘어난 250억원으로 집계됐다. 코람코자산신탁도 작년 상반기에 133억원 적자를 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55억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한국자산신탁(193억원), 대한토지신탁(44억원), 신영부동산신탁(31억원)은 각각 흑자를 냈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실적에 차이가 나는 건 금융 계열 신탁사들이 부동산 활황기에 책준형 토지신탁 사업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은 건설사가 자금난 등으로 약속한 기한 안에 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신탁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는 구조다. 물류센터,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이 주요 사업 대상이었다.
적은 자본으로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작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며 신탁사에 큰 압박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나이스신용평가도 지난달 '2024 크레딧 세미나'에서 "책준형 토지신탁은 차입형보다 더 큰 손실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차입형은 보통 신탁사가 사업비를 직접 조달해 건물을 짓는 사업이다.
한 신탁사 임원은 "지방 건설사들이 많이 무너졌고 자재 가격이 워낙 올라 공사비 인상을 안 해주면 사업을 못한다고 버티는 건설사들도 생겼다"며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당분간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