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건설, 세운 4구역 보유토지 SH에 매각 추진
SH, 한호 땅 사면 지분 70%
사실상 공영개발 길 열리지만
용산 등 대형 사업 이미 맡아
재정부담 커져 매입 불투명
한호건설, 특혜 의혹 반박
"서울시장 바뀔때마다 변경
인허가 지연으로 피해 입어"부동산 개발 기업 한호건설이 서울 종묘 맞은편에 있는 세운4구역에서 사업 철수에 나서면서 도심의 핵심 재개발 사업지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 개발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세운4구역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공사)가 한호건설의 토지를 매입하면 이 구역은 완전히 공공 주도로 개발이 추진될 전망이다. 토지 매입이 난항을 겪을 경우 세운4구역 사업이 또다시 장기 표류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일 한호건설은 SH공사에 자사가 보유한 세운4구역 내 토지 3135.8㎡(950평) 일체를 매수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사업 철수 수순을 밟겠다는 뜻이다.
2006년부터 본격화한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은 SH공사가 진두지휘해왔다. 그러다 2022년 한호건설은 세운4구역에 낮고 뚱뚱한 빌딩 대신 거대한 녹지를 품은 고층 복합개발을 추진한다는 SH공사의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2022년 10월부터 1년에 걸쳐 토지를 매입했다. 전체 토지의 10% 수준이다. 세운4구역 민간 참여자의 일원이 됐다. 한호건설이 3년 만에 사업 철수를 택한 데엔 세운4구역이 정쟁화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세운4구역은 지난 10월 말 서울시의 여러 심의를 거쳐 최고 높이 142m의 재개발 계획이 최종 확정됐다. 세운4구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에 있지만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그 주변을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한 구역 밖에 있다. 그런데도 세계유산 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급기야 사업자 특혜 의혹까지 제기됐다. 업계에선 "일방적으로 정치권의 공격을 받게 된 상황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방자치단체장에 따라 개발 계획이 바뀌면서 사업 예측 가능성이 낮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2006년엔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고층 개발을 통해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거대한 도심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인해 사업이 지지부진해졌다. 2011년 박원순 시장은 정반대인 보존을 내세운 재생 전략을 들고나왔고 2014년 세운상가 철거 계획을 백지화했다. 사업성을 크게 떨어뜨렸고 개발이 멈췄다. 2021년 서울시장으로 복귀한 오 시장은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하면서 세운상가는 철거 쪽으로 되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세운4구역 높이는 122m→71.9m→141.9m로 들쭉날쭉했다.
SH공사가 토지를 매입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020년 민간 토지주(382명) 중 절반 이상인 227명이 현금청산을 선택한 데다 한호건설의 토지까지 사들이게 되면 SH공사의 토지 비율은 70% 수준까지 올라간다. 완전한 공공 주도 개발로 판이 짜지는 셈이다. SH공사가 땅을 매입해도 추가 비용이 들어간 만큼 사업성은 더 낮아지고 SH공사 재정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세운4구역의 사업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비례율은 103% 선이다. SH공사는 "토지 매입이 가능한지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SH공사의 부채를 고려할 때 토지 매입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공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지만 이미 SH공사 부채는 올해 22조원, 내년 27조원을 넘어 2027년엔 30조여 원에 달할 전망이다. 2027년 부채비율이 267%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기공식을 개최한 용산국제업무지구와 백사마을, 구룡마을 등 SH공사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대규모 사업도 많다. 현금청산과 달라서 시행규정에 대한 검토를 비롯해 여러 가지 내부 절차도 밟아야 한다. 일각에선 토지 매입이 늦어질 경우 사업이 다시 표류하고 최악의 경우 좌초 위기에 빠질 염려도 있다고 본다.
향후 도심 재개발에서 민간 기업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세운4구역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오락가락 행정과 과도한 규제 등으로 인해 총체적 사업 리스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강북의 새로운 모멘텀이 될 수 있는 세운지구 재개발이 늦어지면 낙후된 도심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 한창호 기자]